하원 展 1998. 3. 25. ~ 3. 31. 갤러리 보다

                                                 이 희 영 / 미술비평

지난 달 갤러리 보다에 진열된 하원의 제작물들은 그것들이 자아내는 화랑공간의 역할에서 몇몇 특징을 갖고 있다. 하원은 자신의 생활 속에서 목격한 자연의 표피들을 엷고 부드러운 펄프로 떠낸 결과물들을 화랑공간에 설치한다. 그 공정의 결과는 곧 두 가지 상반된 성격의 공존과 대립의 문제를 야기한다. 이들 하원의 공간은 특정 사물의 표면을 각인하는 점에서 판화 제작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반면에 그 결과물들이 실재하는 실내 환경에 제시된 점에서 판화의 전통적 한계인 평면을 넘어서고 있다.

하원, 흔적의 조각, 1997, 페이퍼 캐스팅, 천

양립 불가능한 두 영역간의 공존을 가능케 하는 역할은 판화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그녀의 조형적 전략과 맞물려 있다. 이 표면들이 미술가로서의 전문적 훈련과정 중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사색에서 발견되고 선택된 점에서 그리고 그것들이 밝고 흰 벽으로 구성된 사각형의 신성한 방인 화랑에 집합된 점에서 화원의 화랑공간은 미술가 자신의 사사로운 삶과 판화라는 조형 형식간의 대립과 공존을 가능케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판화와 실재하는 공간의 대립 그리고 삶과 예술의 대립, 이들을 함께 공존시키려는 기획은 사실 화원만의 것은 아니다. 지난 10 수년간 인사동에서 시도된 의욕적인 설치미술의 기획들에서 우리는 한 가지 시장기를 느껴왔다. 이들 설치물을 제작하는 몇몇 미술가들의 과잉된 진취적 기상은 미술이 담당해 온 매체인 공간의 문제를 도외시한 채 서술적 연상을 통해 안일한 관람자의 감정을 구걸하는 것에 의존하는 것들에서 더욱 그러했다. 이와 같은 양상에 하원의 화랑공간을 견줄 때 하원의 제작물들에서 발견되는 화랑공간의 융화는 이러한 시장기를 어느 정도 채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