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Search Article

읽은기사 0
no img
News
Joy
Criticism
History & Theory
   현재위치 : HOME >   >    >  
   국내 미술 현장의 동향과 평가 / 미술 감상 안내   
不在를 조명하는 통찰: 선덕여왕의 미술비평


학예기획실   /   ART & Collector   /   2011. 3. 8.
 

부재(不在)를 조명하는 통찰

                    선덕여왕의 미술비평



 

 2009 © COPY RIGHT by MBC

     MBC 드라마 "선덕여왕"의 포스터

                 2009년 5월에서 12월에 방영





이희영, 미술평론가





선덕여왕(덕만 德曼, 587~647)과 모란꽃 이야기는 많이 알려졌다. 그래서 새로울 것이 없을 법하다. 이 이야기는 그림에 대한 개인의 구체적 관점과 해석을 담고 있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동시에 등장한다. 그런 점에서 선덕여왕은 한국 미술사 최초의 미술평론가로 불릴 만하다. 여왕은 당(唐)에서 온 모란 그림과 꽃씨를 보고 "꽃이 비할 바 없이 아름답기는 하나 그것은 틀림없이 향기가 없을 것"이라 했다. 그 씨를 심어 꽃을 피웠을 때 과연 모란은 그의 말대로 향이 없었다. 나중에 선덕여왕은 "아름다운 꽃의 향기가 벌과 나비를 불러 모으기 마련인데 그림에 벌과 나비가 없었으므로 그 향기가 없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서 이야기는 여왕의 공주시절을 배경으로 부왕과의 대화로 이루어지고 향기가 없을 것이라는 예지적 판단이 씨를 심기 전에 나타난다. 반면 「삼국유사」에서 이 일화는 여왕의 제위 초 당나라 태종(太宗)이 빨간, 보라, 흰색으로 그린 모란 그림과 씨 서 되를 보내왔다는 내용이 신하들과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삼국유사」는 또 여왕이 도성 가까이에 침투한 백제군의 매복을 자연의 이상징후를 통해 알아챈 것과 자신의 죽음을 앞서 안 것을 이 모란 그림 이야기와 함께 다룸으로써 그의 지혜를 부각한다.
 

     도판1  윈강석굴(雲崗石窟) 제 11호굴의

               「본존불」 세부, 470~493, 따통(大同)



   두 역사서의 내용은 몇몇의 작은 차이를 보이지만 그림과 그것을 보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난 정황 그리고 통찰력 있는 여왕의 언급을 다루는 점에서 같다. 당시 이들이 목격한 모란꽃의 이미지를 추론할 어떠한 사료도 한반도에서는 아직 발굴된 바 없고 더욱이 같은 때에 당에서 생산된 꽃 그림을 찾을 길도 없다. 여왕의 사후인 통일신라기에 생산된 한정된 유물의 표면에서 꽃 이미지가 도식적 장식이나 문양의 형식으로 겨우 발견되는 정도다. 세 가지 색으로 그려졌다는 삼국유사의 기록과 "비할 바 없이 아름답다(絶艶)"라는 삼국사기의 언급으로 그 모란꽃의 외관을 대충 짐작할 따름이다.



이들이 목격한 생소한 꽃그림은 단순한 도안이나 도식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비할 바 없는 아름다움"이라는 언급은 그들이 여태껏 보지 못한 새로운 시각적 자극에 관한 것임을 엿볼 수 있다. 더욱이 당시는 수(隋)․당이라는 거대 제국으로 동북아의 질서가 재편되고 불교문화가 융성하던 때이다. 이는 한대(漢代) 이후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의 다양한 실험이 안정을 찾아 가는 때이기도 하다. 이 시기는 불교의 전파와 함께 지중해의 표현 방법이 전파되고 극동의 것으로 막 융합되던 때이다. 당의 황제가 보낸 꽃 그림은 그 융합의 정보가 묻어 있음에 분명하다.



윈강석굴(雲崗石窟)은 서역의 정보를 통합하는 위진남북조의 실험을 대표한다. 그 중 제 11호굴의 본존불에 꽃 그림이 남아 있다(도판 1). 이 꽃 그림은 선덕여왕과 그 이웃이 모란 그림을 보기 약 150여 년 전에 제작되었다. 여기에서 꽃은 광배를 장식하기 위한 도식으로 그려졌으나 꽃의 생태적 특성이 정확히 재현되어 있고 허공에 떠 있는 착각을 유발한다. 이러한 상승감은 용의 승천에 의해서 그리고 불과 같은 비정형적 형태의 율동에 의해 고양된다. 상승과 율동은 고정된 시각을 벗어난 것에 대한 관심이다. 이는 기원전 6세기 경 지중해의 도리아인(Dorian)들에 의해 고안된 환각(illusion)이 극동에서 적극적으로 융합된 증거이다. 도리아인들은 돌에 표정을 새김으로써 돌의 물리적 진실을 가리는 생기의 환각을 만들었다.

 

      도판2      조우팡(周昉), 「잠화와 궁녀」(簪花仕女圖)세부



   선덕여왕이 모란 그림을 봤을 때보다 약 130~140년 후에 당의 조우팡(周昉, 766~804)이 그린 「잠화와 궁녀」(簪花仕女圖,
도판 2)에 꽃이 등장한다. 이 꽃은 옥잠화이다. 그것은 윈강석굴의 꽃에 비해 훨씬 현실적 모습으로 땅에 뿌리박은 채 나들이 나온 궁녀들과 함께 한다. 여기서 꽃은 곧 바람에 흩날릴 것처럼 보이고 인접한 인물의 몸짓에 반응할 듯하다. 이 그림에는 꽃과 이파리 그리고 인물의 옷자락을 움직이는 바람이 간헐적으로 감지된다. 인물이 지닌 잔잔한 표정과 속살이 비치는 겉옷은 이미 지중해식 환각이 극동의 것이 되었음을 논증한다. 무엇보다 볼 수 없는 바람을 보이도록 착각을 유발하는 점에서 그 융합은 이미 완성되었고 극동의 새로운 시각을 연 것으로 보인다.



771년에 완성된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의 표면에 등장하는 비천(飛天)은 환각의 극단에 도달한다(도판 3). 그것은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심지어 상상하는 것마저도 뭐든 표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차 있다. 여기에는 윈강석굴의 꽃에서 보인 상승과 율동 그리고 주우팡의 표정과 바람이 녹아 있다. 두 손을 모은 인물은 반 측면으로 포착되고 고전고대 그리스에서 성취된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를 취한 채 허공에 떠 있다. 화염처럼 피어나는 천의와 구름 그리고 꽃잎들이 바람을 가눈다. 신종의 비천이 적극적으로 바람과 같은 비가시적 대상과 결합됨으로써 거의 동시대에 제작된 주우팡의 인물과 꽃의 움직임을 굳은 것으로 혹은 수동적인 것으로 비치게까지 한다.

 

2007 © COPYRIGHT by Heui-yeong Yi

  도판3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의

        비천상, 771, 378x227, 국립경주박물관

  지중해식 환각의 사례

        「에로스」 벽장식 부조, 1세기 로마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선덕여왕과 그의 측근들이 목격한 모란 그림은 윈강석굴의 꽃에서 주우팡의 꽃으로 전개해 가는 환각의 발전적 맥락의 한 가운데 자리 한다. 그것은 모란의 아름다움과 생태와 같은 구체적 정보가 묘사되었을 것이고 또한 바람이나 계절과 같은 비가시적 사정마저 감지되었을 것이다. "비할 바 없는 아름다움"은 그 꽃 앞에 모인 모든 이들이 충분히 위진남북조의 정보와 반도의 지역적 정보로 바라봤음을 의미한다. 그들 중 여왕은 비가시적 상황만 본 것이 아니라 부재(不在)도 봤다. 이 점이 여왕을 그 곁의 사람들에서 구별되게 했고 예지를 드러내게 했다.



그림의 외관을 지적하여 그 너머의 정보를 발굴해내는 선덕여왕의 판독은 현대 미술평론의 가장 신뢰 있는 방법과 유사하다. 나비와 벌의 부재가 두드러질 정도로 위진남북조의 전통을 따르는 환각이 충분히 제시된 그림 앞에서 그의 지적은 눈에 보이는 사실에만 사로잡히지 말 것을, 그리고 그렇게 보이는 그 사실을 토대로 볼 것을 충고한다. "비할 바 없는" 극동의 환각이 성취된 성덕대왕신종의 비천은 그와 같은 선덕여왕의 비평이 있었기에 다음 세대에서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각적 해석의 시도와 새로운 이미지 창출의 분투가 진행되는 극동의 7~8세기가 지중해에서 유래하는 환각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키는 반면 같은 때에 정작 그것이 창출된 지중해 지역은 유럽으로 포함되는 새로운 질서 속에 오히려 환각을 버리는 길을 택한다. 그 선택은 로마네스크와 비잔틴 세계로 향한다. 성덕대왕신종의 비천에서 시각을 능가하는 향기와 소리마저 환각으로 표현될 정도로 환각이 발전하는 반면 유럽은 그 환각을 포기한 채 이미지와 의미를 동일시하는 상징의 길을 선택한다. 이는 문화의 접변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역설이다.

기사 보관함 :   
       ◆ 관 련 된 기 사 보 기
       ◆ 기 사 관 련 문 의
해당 기사의 질문이 없습니다.
 
       ◆ 저 작 권 에 대 하 여
ARTne를 이용하는 분들은 아래에 내용을 반드시 준수하여 주세요
- 이 사이트의 이용자는 ARTne의 사전 허락이나 허가 없이 어떠한 매체에도 직,간접적으로 변조, 복사, 배포, 출판, 판매하거나 상품제작, 인터넷, 모바일 및 데이터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합니다.

- 이 서비스의 이용자 즉, 회원들은 정보를 왜곡,개작,변조하지 않을 것을 확약하며 ARTne는 이를 통해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또한 사전의 서면 허가 없이 ARTne의 정보를 이용하여 영리, 비영리 목적의 정보서비스, 재판매를 할 수 없습니다.

- 이 서비스를 통해 제공받은 정보의 사용은 이 웹사이트 내에서의 사용으로 제한하며 인터넷,모바일 등 전자매체로의 복사, 인쇄, 재사용을 위한 저장은 허가되지 않습니다. 단, 개인적 참조나 교육의 목적등 비영리적 사용에는 예외적으로 허용되나, 이러한 경우에도 반드시 결과물에는 출처를 "ARTne.COM"로 명시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ARTne가 아닌 경우에는 정보하단의 저작권자를 참조하여 해당 저작권자의 출처를 명시해야 합니다.)

- ARTne와 계약을 체결하여 정보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용자는 허가된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아트네는     l     이용방법안내     l     이용약관     l     개인정보정책     l     제휴안내     l     제보/투고     l     광고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