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Search Article

읽은기사 0
no img
News
Joy
Criticism
History & Theory
   현재위치 : HOME >   >    >  
   국내 미술 현장의 동향과 평가 / 미술 감상 안내   
이피의 “서유기”에 대한 단상


ARTne Reporter   /   2015. 7. 19.

 

디아스포라와 디오니소스

이피(Lee Fi Jae)서유기(Monkey to the West)”에 대한 단상

 

 

 

유경희, 미술평론가

 

나는 그녀가 자신 안에 검고 따뜻한 짐승 한 마리가 있다고 말할 때 지난 밤 털 많은 어떤 짐승이 나의 목덜미를 꼬리부터 아주 천천히 감고 조이다가 스르르 풀면서 지나갔었다는 생각에 미쳤다. 내 아파트 옆집 중년의 일본인 부부는 페르시아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고, 허술한 베란다를 타고 그 고양이가 나에게 접근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lifi011_02.jpg

               Quira Fountain, 2009, Mixed Media, 198 X 220 X 220

 

그러나 정작 그것은 언제 일어난 일인지 모호하며, 꿈인지 현실인지 초현실인지 조차 구분되지 않았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이피는 일년 째 오승은의 서유기를 슬슬 녹여먹고 있다. 그것은 그녀로 하여금 자신만의 서유기를 새로 쓰도록 자극했다. 삼장법사는 원숭이 일행과 동행하지만 자신은 검고 따뜻한 짐승 한 마리를 품고 다닌다고 말한 것도 그 맥락에서다. 그녀는 이것을 태어나기 전부터 잠재해있던 어떤 에너지라고 느낀다. 그 짐승은 무엇으로도 변신하여 세상 밖으로 튀어나올 수 있는 어떤 에너지 혹은 가능성이다. 그것은 작가만의 예술의 근원이자 원동력이다.

 

한편 검고 따뜻한 짐승 한 마리는 정신분석학적으로 크리스테바의 코라(chora)”를 연상시킨다.1) 코라는 타자를 품은 어머니의 신체 곧 이물질을 담은 큰 타자로서 무의식의 그릇인 동시에 사랑과 고통을 상징하는 여성신체를 의미한다. 그것은 주체와 객체 모두를 포함하는 공간, 분리할 수도 없는 경계선상의 존재이다. 그런 의미에서 검고 따뜻한 짐승은 코라와 연결되는 한편, 코라는 다시 작가의 사이에 존재하기의 사유와 연관된다.
       lifi030.jpg

           Memememememe Candle, 2009, Mixed Media, 70.5 X 200 X 40

 

 

때로 예술은 철학과 마찬가지로 어떤 질문이다. 이피 역시 지속적으로 회의하고 질문한다. 그녀는 나는 누구인가?”라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는 대신 나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자신의 위치에 대해 질문한다. 왜냐하면 세상에 던져진 자, 배제된 자, 방황하는 자로서의 예술가는 늘 낯설고 불안하고 두려운 공간과 대면하면서 실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스스로 소외된 자의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의미이며, 이를 타자화라고 명명할 수 있는 것이다.2) 지금부터 이피라는 작가가 자아와 세계, 자아와 타자 사이에서 어떻게 육감적인 저항과 전복의 메시지를 형상화하는지 그 사유의 궤적을 따라가 보자.

 

 

나는 사이에 존재한다. 고로 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피 작업의 출발점은 뒤집기다. 그녀는 안과 밖을 뒤집는다. 일종의 전도이자 반전의 이미지들이 혼란스럽다. 통상 안에 있어야 할 것이 바깥으로 도출되면, 시각적으로 낯설고 이상하며 괴기스럽다. 20세기 후반 신체를 통해 안과 밖을 전도시킨 예술을 애브젝트 아트라고 불렀다. 애브젝트 아트는 신체의 유동물질 즉, 몸에서 나오는 모든 액체인 구토물, , , 생리혈, 정액, 부패물 등을 모티프로 한 미술이다. 이런 예술은 yBa에 오면서 더욱 더 극단적인 카니발리즘(cannibalism)이나 네크로필리아(necrophilia)를 지향하는 것으로 찬란하게(?) 빛났다.

 
lifi068.jpg

Swirling on Her Head, 2008, Mixed Media

                                              198 X 259 X 259

 

 

이피의 작품은 그러한 과도한 센세이셔널리즘을 조장하지 않는다. 그녀는 가장 전통적인 화법으로 그려내지만, 리얼리즘적이 아닌 입체파적인 동시에 추상적으로 표현해낸다. 그녀의 벗겨낸 피부와 드러난 내부는 그래서 덜 역겹고 덜 그로테스크하며 덜 도발적이다. 오히려 좀 유머러스한 동시에 위트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진지하지만 심각하지는 않은 방식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그렇게 편집증적으로 표피를 거두어 내고 내부를 드러내는 작업에 매달리는 것일까? 그것은 그녀의 작업환경이었던 타국에서의 삶을 배제하고는 논할 수 없다. 그녀의 예술은 그녀만의 디아스포라적인 체험에서 유래한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조그만 동양 여자 즉, 타자의 타자로서 존재했던 유학시절, 이피는 언제나 중심 혹은 주류라고 부르는 것의 외부/바깥에 내동댕이쳐져 있는 실존적 자아를 목도한다. 타자로서의 공포가 가위눌림, 까마귀 울음, 거울 속 여자와 같은 이미지로 나타났다. 익숙해지지 않는 불안, 적대할 수 없는 적들 속에서 그녀가 머물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 소통불능의 세계는 혼돈이고 억압이고 암울이었다. 외부의 강제는 더욱 더 자신의 내면으로 도망치게 했다. 우선은 상상계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 조차도 그녀에게는 허용되지 않거나 안주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무도 다니지 않는 곳, 거울의 앞면과 뒷면 사이, 피부와 내장 사이 어두운 곳, 빙산과 빙산 사이의 크레바스(빙하와 빙하 사이의 균열) 등 세상의 모든 사이를 자신의 거처로 받아들인다. 그녀는 어디에도 없는 공간, ‘사이에 존재하기로 했던 것이다. 사실 어디에도 없는 공간은 유토피아-u(no)topia(place)-를 의미하지만, 그녀에게 사이는 그렇게 만만한 공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늘 감각을 새롭게 유지해야만 했을 것이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긴장의 칼날을 곧추세우지 않으면 안되는 곳이었다.

 
lifi068_detail_02.jpg

Swirling on Her Head, 2008, Mixed Media, 198 X 259 X 259의 세부

 

 

 

먼저 이피는 표피를 제거한다. 그것은 프로이트적 초자아의 개념, 즉 도덕이나 양심, 윤리와 이성 같은 부성의 세계에 다름 아니다. 이런 부성의 세계는 서양/백인/남성이 주체인 세계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배제되어 타자가 되는 존재는 동양/유색인종/여성이다. 물론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가에 따라 그 위상은 반전되기도 한다. 이렇듯 그녀가 표피를 제거하고 내부를 드러냄은 언어, 질서, 법에 의해 강요되는 초자아의 세계 혹은 상징계를 거부하며, 억압된 무의식, 금기의 해제와 같은 날 것의 이미지를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표피를 제거하는 일이 동시에 상상계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일까? 물론 벗겨낸 표피 속에 내부의 모습은 더 이상 정체성을 묻지 않는, 편견에 도전하는 어떤 풍요로운 제스처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진정으로 욕망하는 바가 해소되거나 실현된 것일까?

 

 

리좀적 사유, 편집증인 동시에 분열증

 

이피의 전 작품은 각각 하나의 단독체로 존재하는 동시에 한편의 소설 속의 플롯처럼 하나하나가 전체를 구성하고 작동시키는 요소처럼 기능한다. 그것은 구조주의적인 동시에 탈구조주의적이다. 그로써 작가의 삶을 통한 사유의 궤적을 낱낱이 보여준다.

 
The_Squid_Buddha_head2_02.jpg

           The Squid Buddha Head 2, 2007

 

 

이피의 작품은 대부분 자동기술적 드로잉에 근간한 것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초현실주의자들과 근친성을 지니지만 치밀하게 계산되고 묘사된 구성은 전적으로 그렇게만 보이지도 않는다. 또한 이피의 작품에서 드로잉이든 입체든 수공업적으로 진행된 무모한 노동력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방식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녀의 작품은 자유로운 동시에 딱딱한 선과 면이 공존하며 유기체적인 선들과 매끈한 선이 번갈아 등장한다. 때론 대중문화의 일상적인 도상들과 더불어 오방색과 같은 원색의 사용은 키치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피의 드로잉적 이미지는 생성 중이다. 외계생명체 혹은 유기체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그것은 마치 기계의 작동원리처럼 진화한 이미지처럼 보이는 동시에 직관적이고 비체계적인 방식으로 일어난 돌연변이적 진화의 산물 같기도 하다. 디테일을 사상시키지 않은 방식으로 진화한 생명체라고나 할까?

 

주지하듯 이피는 사이의 존재로서의 자신에 대해 사유한다. 그녀는 봄과 보임 사이, 안과 밖 사이, 신과 인간 사이, 서양과 동양 사이, 피부와 피부 아래 사이를 맴돌았다. “나는 있음을 창조하려고 서역으로 가는 나와 따뜻하고 검은 에너지 덩어리인 없음을 향해 가려는 나 사이에서 분열했다. 이방인으로서의 나와 본래의 내가 분열했다.”(작가노트) 이피가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방식은 편집()적인 동시에 분열()적이다. 편집증과 분열증은 양극단이지만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볼 수 있다. 편집적인 방식은 바깥에서 안으로 수렴되는 반면 분열적인 방식은 안에서 밖으로 탈주하는 것이다.

 
 
lifi056_02.jpg

             The Intestine Woman (detail), 2008, Mixed Media
                                                                                           224 X 91 X 91

 

그녀가 사용하는 모티프들은 파편적이고 해체적이라는 의미에서 분열증적이고 이런 해체된 이미지들이 다시 어떤 특정한 이미지로 조합된다는 의미에서 편집증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가 사용하는 증식하는 이미지들은 오히려 F. 가타리가 말한 기계적 무의식과 관련된다.3) 오랫동안 무의식은 정신적인 과정에 속하며 우리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심층에 있는 어떤 것이라고 여겨져 왔다. 이와 달리 가타리는 무의식이 현실 생활 속에서 우리의 신체에, 우리의 사회관계에 붙어서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억압된 것의 저장소(프로이트, 라캉)라거나 원형과 상징의 장소()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재료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정신과정 속에서 징후로서 드러난다는 무의식 개념에 반하여, 행동에 붙어서 행동의 방향을 수정해나갈 수 있는 시각적 음악적 구성요소들을 지닌 무의식 개념을 제시했다.

 

가타리가 말한 기계적 무의식의 작동방식이 이피의 작업 방식에도 얼마간 적용된다고 보아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작업방식은 자기생산에 근거한 무의식의 작동방식인 것이다. 따라서 이피의 작품은 프레임 안에 갇혀져 있기에는 너무 역동적이다. 그것은 프레임을 제치고 리좀적으로 증식하고 확산될 가능태의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환타지와 상상력의 리좀적 진화, 이것이 이피 작품의 생명력이다. 더불어 이피의 화려하고 혼란스러운 이미지들은 그녀가 엄숙주의에 빠져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금기가 해소되고 열정과 광기가 폭발하는 디오니소스 축제의 현장에 와있는 듯 혼을 빼놓는다. 들뢰즈가 니체-되기의 지혜를 통해 얻어낸 아이-되기” “여신-되기” “짐승-되기를 그녀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스럽게 현실화시키고 있는 측면은 매우 돋보인다. 그런 자발성과 긍정은 신성한 것인 동시에 천진한 것이다.

 

 

잃어버린 여신, 우리 속의 웅녀

 

귀국한 후 작가는 한국의 여신의 존재를 생각해냈고 급기야 제단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작가는 왜 여신과 제단을 만들었을까? 왜 그녀는 외로운 밤마다 신전으로 달려가야만 했을까? 그녀는 왜 스스로 여신이 되어야만 했을까? 여신이 되는 일! 그것은 얼마나 낯선 일인 동시에 자연스러운 일인가?

 

여신의 신전은 어머니의 자궁이자 우주의 배꼽이다. 작가는 이곳에서만 충분히 자유로우며 영적 오르가즘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신을 잃어버렸다. 이피는 먼저 건국신화 속의 웅녀를 생각해냈다. 물론 웅녀는 곰을 토템으로 하는 부족을 상징하는 것이다. 웅녀로 대표되는 한국의 여신들은 왜 사라져야만 했을까?

The_First_woman_of_Korea_02.jpg

The First Woman of Korea, 2009, Plexiglas, Submercible Water Pump, Hose, Red Edible Dye, Resin, Rice Paper, Ink, Color Pencil, Marker, 198 X 127 X 127

 

 여신들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역사 속에서 본래의 이름을 잃은 채 왕의 아내가 되고 딸이 되고 흉악한 마녀가 되어 잊혀졌다. 여신이 남아있으려면 여신을 모시는 제의가 지속되어야 하지만 유교와 같은 남성중심적 문화로의 변화 속에서 이는 폐기처분되어 버렸다. 따라서 그 의식들은 사라져 신화로 전승되지 못하고 전설화 혹은 민담화 되어 희극적인 인물로 변하는 등 변형된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여신은 자신의 역사를 잃고 수수께끼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역사가 지워버린 여신은 한 예술가에 의해 부활한다.

 

웅녀(The First Woman in Korea)는 입체작품으로 곰의 형상에서 인간이 세상으로 튀어나오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작가는 웅녀를 고행을 통해 생명을 생산했지만 사라진 존재인 동시에 자신과 같은 이방인으로 자리매김한다.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붉은 빛 양수가 분수의 형태로 가시화되고, 그 위에선 피가 솟구치고, 몸통을 상징하는 사각의 면에는 식물, 동물, 바다생물 등의 유기체의 이미지가 새겨져 있다.

 

그런 다음 작가는 사라진 여신들이 거하는 신전을 만들기에 이른다. 그녀가 신전을 만든 이유는 다분히 그리스적이다. 그리스 신전에 대해 신전이 있기 때문에 신이 존재한다고 말하면서 존재자와 존재의 원리를 설명하는 하이데거의 철학을 환기한다. 그리스인들은 신전을 세움으로써 비로소 신을 존재케 하고 그것을 통해 한 역사적 민족이 거주하는 세계를 열었던 것이다. 신전이라는 작품은 이렇게 세계를 건립했던 것이다. 이피의 신전 역시 이와 일맥상통한다.

 
ifi014_02.jpg

My Shrine, 2009, Marker, Watercolor, Acrylic on Rice Paper, 215 X 285

 

 

이피가 만든 나의 신전(My Shrine)에 등장하는 신은 우리에게 익숙한 신의 형상이 아니다. 오방색의 다채로운 색채와 더불어 입체주의적으로 해체되고 다시 조합된 듯이 보이는 이 그림은 마치 사이버시대의 무속화처럼 보인다. 세계의 여신들이 그렇듯이 여신은 창조의 여신이며, 남성도 여성도 아닌 자웅동체의 여신일 것이다. 여신의 이미지 속에는 여러 개의 부채와 얼굴, 구슬 혹은 방울, , 물고기, , , 성기인지 코인지 모를 이중 이미지, 성기인지 자궁인지 모를 이중적 이미지, 손가락이 뱀이 되는 이중적 이미지 등 수많은 도상이 표현된다.

 

뱀과 물고기의 연상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서양과 동양, 즉 기독교적인 도상과 한국의 토속신앙 속의 도상이 혼재되는가 하면, 고대와 현대와 혼융되어 있다. 특별히 두드러지는 형태는 부채이다. 무속에서 무당이 사용하는 방울과 부채는 대표적 신물이다.

 
lifi013_02.jpg
Louis XIV-Bodhisattva, 2009, Mixed Media on Rice Paper, 215 X 150

통상 무속에서 방울과 부채는 울림과 파장으로 해석된다. 특히 부채는 신을 부르고 모시고 놀리고 보내고 할 때 사용되어지는 중요한 신물이다. 여러 개의 부채는 춤을 추며 신명이 난 상태로 영적 오르가즘의 순간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여신과 영매는 이미 한 몸이 된 상태로 드러난 것이다. 이런 접신의 순간,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비가 내리고, 뜨거운 태양이 쏟아져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날 것이며 세상은 풍요로움으로 넘쳐나고 인간은 섬세한 포옹과 치유를 받을 것이다. 바로 이 순간 즉, 영적 엑스타시 혹은 영적 오르가즘의 순간에는 너와 나, 자아와 타자, 육체와 정신, 삶과 죽음의 경계가 사라진다.

 

 

세상의 모든 악취: 승천하는 것은 냄새가 난다

 

승천하는 것은 냄새가 난다(Everything Ascending to Heaven Smells Rotten)는 제작할 때부터 주변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견뎌야 했던, 곤혹스러웠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특수한 경험을 담고 있다. 말린 오징어와 청국장은 외국인들에겐 매우 혐오스런 식품이다. 해외교포와 유학생은 자신의 아파트나 기숙사에서 청국장을 끓여먹거나 오징어를 구워먹는 것을 자제한다. 이웃사람들의 항의가 빗발치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에게 말린 오징어가 특별히 혐오스럽게 여겨지는 이유는 그것이 시체 타는 냄새와 유사하기 때문이란다. 오징어 냄새는 서양인에게는 거부해야할 타자와 같은 것, 이것 역시 애브젝트이다.
 
lifi050_02.jpg

          승천하는 것은 냄새가 난다

                (Everything Ascending

                to Heaven Smells Rotten), 2010

               Dried Squid, Mixed Media, 132 X 50 X 50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배경은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 찾은 시위 현장이다. 엄청난 규모의 촛불시위 속에서 군중들이 휴대용 버너에 구워먹고 있었던 것이 바로 오징어였던 것이다. 그녀는 오징어가 한국인의 끈질긴 의식의 근육처럼 느껴졌고, 발사하는 우주선처럼 활기차게 느껴졌다. 그녀의 오징어 에피소드는 독일에서 오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어떤 작가의 감회어린 한마디를 떠올리게 했다. 그동안 그토록 혐오해마지 않은 들쑥날쑥 형형색색의 천박한 간판들이 오랜 부재를 뒤로 하고 마치 율리시즈처럼 고향으로 돌아오는 자신을 향해 하하하크게 웃으며 환영하는 것 같더라는 것이다. 그것은 내 맘에 박혔다.

 

그녀의 말에는 심각한 주제를 한바탕 웃음으로 치환하는 너그러움 같은 것이 배어있었다. 어쨌거나 이피 역시 오징어에 대한 인상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추가 미가 되고, 악이 선이 되는 한끝의 차이를 예술가의 기민한 위트로 간파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오징어가 심해에서 스스로 발광할 줄 아는 별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은 그녀를 매혹시켰다. 그러나 오징어가 오징어잡이 배에 매달린 집어등의 유혹에 이끌려 심해라는 자신의 존재기반을 잃게 되었다는 사실은 작가에게 인간 삶에 대한 커다란 메타포로 읽혀졌다. 이피는 이런 에피소드에 근간해 마른 오징어 조각으로 더 큰 오징어를, 오징어 파편으로 마치 우주인처럼 생긴 하나의 생명체를 만들었다. 애브젝트한 대상으로 소외되었던 오징어가 더 호사스럽게 괴기스러운 모습으로 부활, 바로 타자들의 귀환이다.

 
 
lifi054_02.jpg
          승천하는 것은 냄새가 난다

                (Everything Ascending

                to Heaven Smells Rotten), 2010

               Dried Squid, Mixed Media, 132 X 50 X 50

 

 

이 작품은 아직 미완성일지도 모른다. 역겨운 냄새와 그것에 대한 관자들의 반응까지도 작품의 일환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피의 작품은 1997년 이불이 MoMA에서 스팽글과 시퀸으로 장식한 죽은 물고기를 비닐봉투에 담아 전시한 화엄(華嚴, Majestic Splendor)이라는 작품을 재현하거나 패러디하려는 의도는 없어 보인다.4) 그러니까 이피는 단순히 도발이나 전복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연금술적 창조물의 탄생을 더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타자에 관한 상상력에 대하여

 

예술가는 실존적 두려움이나 불안에서도 머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다. 사실 그것은 능력이라기보다는 천형에하지만 요즘에도 이것이 통할까하는 회의감이 드는 것 역시 시대적 유감이다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예술가는 그가 서있는 공간이 가진 속성 때문이 아니라 태생적으로 지상의 모든 공간이 낯설게 느껴지도록 설계되어 있는 존재들일 것이다. 이피 역시 그가 수년간 미술공부를 위해 머물렀던 시카고라는 물리적인 공간 때문만이 아니라 그 어디에서도 늘 타자일 수밖에 없는 인식의 소유자로 보인다. 여기서 인식이란 실존적 타자의 인식으로 내 안에 나와 함께 있는 이질적이고 낯선 자를 발견해내는 일이다. 이피가 어떤 체험을 하든 그것은 일회의 순수성밖에는 보장되지 않는 체험이다. 이런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작가만의 열정은 스스로를 세상 밖으로, 편안한 일상의 저쪽으로, 거울 밖 낯선 곳으로 계속하여 내몬다. 그녀는 꿈에서조차 언제나 서있는 것이다.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란 늘 타자의 위치에 서야 하는 예술가들에겐 일상인 동시에 카르마()와 같은 것이다.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 힘을 얻기 위해서 이피의 작품은 타자들과 소통하는 언어의 보편성과 또 그 보편성을 살짝 넘어가는 정교한 수사(rhetoric)에 대한 책략이 전제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그녀가 가진 확고한 내러티브가 조형언어로 가시화되는 지점 즉 내용이 형식으로 전환되는 지점에서 작가가 소통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주제가 얼마나 호소력이 있게 표현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숙고해보아야 할 것이다. 작가의 작품이 다소 자의적인 독백처럼 느껴지는 우려를 지적하는 것 역시 그녀의 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오르가즘이 단순히 오토에로티시즘으로 끝나기를 원치 않는 마음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을 쓰는 내내 이피라는 젊은 작가의 검고 따뜻한 짐승 한 마리라는 기표와 더불어 뜨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짐승(에너지)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매번 숨죽여 바라보는 미적 쾌락의 시간이었다. 이피의 서쪽으로의 여정,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모를 전쟁 같은 여정을 위하여!

 

 

 

기사 보관함 :   
       ◆ 관 련 된 기 사 보 기
       ◆ 기 사 관 련 문 의
해당 기사의 질문이 없습니다.
 
       ◆ 저 작 권 에 대 하 여
ARTne를 이용하는 분들은 아래에 내용을 반드시 준수하여 주세요
- 이 사이트의 이용자는 ARTne의 사전 허락이나 허가 없이 어떠한 매체에도 직,간접적으로 변조, 복사, 배포, 출판, 판매하거나 상품제작, 인터넷, 모바일 및 데이터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합니다.

- 이 서비스의 이용자 즉, 회원들은 정보를 왜곡,개작,변조하지 않을 것을 확약하며 ARTne는 이를 통해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또한 사전의 서면 허가 없이 ARTne의 정보를 이용하여 영리, 비영리 목적의 정보서비스, 재판매를 할 수 없습니다.

- 이 서비스를 통해 제공받은 정보의 사용은 이 웹사이트 내에서의 사용으로 제한하며 인터넷,모바일 등 전자매체로의 복사, 인쇄, 재사용을 위한 저장은 허가되지 않습니다. 단, 개인적 참조나 교육의 목적등 비영리적 사용에는 예외적으로 허용되나, 이러한 경우에도 반드시 결과물에는 출처를 "ARTne.COM"로 명시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ARTne가 아닌 경우에는 정보하단의 저작권자를 참조하여 해당 저작권자의 출처를 명시해야 합니다.)

- ARTne와 계약을 체결하여 정보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용자는 허가된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아트네는     l     이용방법안내     l     이용약관     l     개인정보정책     l     제휴안내     l     제보/투고     l     광고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