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자각을 넘어

                     김지은의 회화

김상엽, 미술사가

안온한 일상을 상징하는 여러 소재를 파스텔 톤으로 표현한 김지은의 작품은 부르주아적인 한가롭고 나른한 일상의 반영 정도로 비쳐질지 모르겠다. 밝고 세련된 색감과 실내의 계단, 소파, 화분, 세발자전거, 고양이 등 익숙한 사물의 등장은 얼핏 소녀적 감성의 표출이라 치부할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미술은 물론 다른 예술의 분야에 있어서도 작품의 소재는 대개 작가의 유년 기억의 무의식적 재현이거나 내면의 상념과 욕구, 지향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의식의 편린을 엿보게 해준다. 화면에 등장하는 여러 사물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지만 마치 미답의 처녀지인양 낯설어 보인다. 작가는 단순한 나열이나 배치를 넘어 데페이즈망(dépaysement: 轉置) 곧 “우리에게 낯익은 대상이 그것과는 상관없는 장소에 놓여 졌을 때 느끼는 당혹감과 신선함”을 의도한 듯하다. 한편으론 '유럽화단의 이단아' 발투스(Balthus)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조금 열린 문으로 호기심을 유발하고 관음증적 시선을 끌어내는 방식과 유사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발투스가 그로테스크하고도 도발적 문제제기를 통해 "잔인한 고독감"을 그려낸데 비해 김지은은 내면의 세계로 침잠하여 자신과 마주하고 있고 그 표현은 훨씬 부드럽고 넉넉하다는 근본적 차이가 있음은 물론이다.

김지은은 그동안 실내의 공간과 일상적 소품 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작품을 제작해 왔다. 대체로 따스하고 부드러운 색채로 그리되 무게감을 의도적으로 제거하여 초현실적인 분위기마저 감돌게 하는 방식이었다.  안락한 일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했던 작품경향이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음을 이번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전의 안정된 구도나 배치를 지양하고 사선구도를 많이 사용하였고 대상을 가까이 클로즈업하거나 클로즈업한 대상 뒤로 다른 대상을 뒤에 두어 거리감을 강조하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특히 붓으로만 시종하던 방식에서 콜라쥬 기법으로 질감을 표현하는 변화를 보이고 있음은 특기할 만하다. 배경을 검은 색으로 칠하고 종이를 찢어 붙이고 떼는 등 만만치 않은 공력이 드는 최근의 작업 경향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임팩트가 강한 화면을 연출하는 데에 성공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작품의 변화를 살필 경우 먼저 주제의식의 변화와 기법의 변화에 유념하지 않을 수 없다. 주제의식과 기법이야말로 '무엇을', '어떻게'라는 가장 근본적인 물음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번 전시는 작가 의식의 넓혀진 지평과 성공적으로 반영된 기교의 세계를 함께 엿보게 해준다. 평온한 듯해 보이는 일상에 감춰진 고독과 불안한 균형, 미묘한 불협화음을 포착하고 포착된 내용을 성공적으로 반영해 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경향이 우연이 아닌 고뇌와 노력에 의한 필연적인 귀결임은 이번 전시의 여러 작품들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작품은 우연에 의해 제작될 수 있지만 논리적 연결성을 가질수록 완성도와 수준을 담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현상이다.

형태를 모사하고 화면에 그리는 행위는 그림의 기본이지만, 모사하고 색을 ‘바르는’ 단계를 넘어 자신의 내면을 반영하고 세계를 재해석하여 '표현'하는 단계로의 전환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작품은 작가의 사유의 폭과 깊이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형의 변화는 세계관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을 직시하고 내면을 반영한다는 것 곧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자신의 세계를 표현한다는 것은 작가만의 권리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작품은 언제나 작가만의 애증물로 존재하는 숙명을 지닌 것인지도 모른다.

신인에게는 선입관이나 편견 등 작품 이외의 굴레가 없기에 얼마든지 자유로운 행보가 가능하다. 다양한 시도나 도전을 해볼 수 있는 특권이 보장된 셈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자유와 특권이 오히려 부담이나 중압감이 되는 경우가 있음을 심심치 않게 목격하곤 한다. 자신에 대한 성찰과 관조가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외적 발산은 배설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장통을 넘어 자신만의 시각과 붓으로 무장한 새내기 작가의 의욕 넘친 작품을 '1980년대 한국화의 성지' 관훈갤러리에서 소개하게 된 기쁨을 이렇게 짧게나마 서술하고자 한다.


 

김 지 은 (Kim Ji-eun)

국립 인천대학교 미술학과 (한국화 전공) 졸

국립 인천대학교 대학원 한국화 전공 재중

개인전

2009 Logical time - Story 展, 관훈갤러리, 서울

2008 인천 아트페어, 인천문화예술회관, 인천

단체전

2009 인천미술은행 소장전, 부평역사박물관, 부천

2008 View Finder of YAP 展, 갤러리 정

     제7회 인천한국화대제전 ‘아시아드. 한국. 인천-展, 인천문화예술회관, 인천

     만남-meet 展, 갤러리 하루

    ‘生線’展, 혜원갤러리, 인천

     인천대학교 교․강사 동문 展, 인천문화예술회관, 인천

2007‘꽃향기’展, 갤러리 꽃

      12회 신진작가 발언展, 이형아트센터, 서울

      단원 우수대학원생초대展, 단원전시관

      서울 아트페어, SETEC, 서울

      감성의 표현展, 이형아트센터, 서울

      중국 연변인민정부 화원 초대展

      인천 아트페어 차세대 작가展, 인천문화예술회관

    ‘단풍잎 사이로 비치는 갈매기 그림자’展, 갤러리 다

    ‘수묵 상상’-異目 展, 갤러리 다

수상경력

       인천아트페어 차세대 신진작가 선정

     ‘갤러리 정’신진작가발굴 공모 신진작가 선정

       2008 제38회 충남미술대전 특선

       2007 서울시립 미술대전 특선

       2007 소사벌 미술대전 특선

작품소장

    인천문화재단(미술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