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미술가로서 정동원의 수업기는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걸치고 있다. 이 기간 정동원은 회화와 판화의 훈련을 서울과 뉴욕에서 받았다. 지금에서 돌이켜볼 때 이 시기 서울은 현대미술의 다양한 양상의 수용과 실험이 두드러져 보이는 반면 뉴욕은 한 세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100년대를 열어 가는 예술적 분투가 선명해 보인다. 그 속에서 진행된 한 젊은 미술가의 분투는 이제 현대미술의 교육적 성과에 관한 개별적 결과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 역량을 가늠해볼 기회가 될 것이다.

한국에서 미술이 논의 될 때마다 한국의 문화적 동질성을 확정하는 구체적 형식에 관한 주목이 강조되어 왔다. 항일투쟁기와 한국전 이후의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다양한 각성의 계기들에도 불구하고 미술에서 한국의 특성을 강조할 수 있는 예술적 형식은 지금까지 미미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다원주의와 모더니즘의 이완국면을 하나의 출구로 간주하고 새로운 술어들을 동원하여 마치 ’6, ’70년대의 “아방가르드”에 대한 신념이나 그 실천들이 가졌던 기대를 복구하려는 조짐이 있다. 그 대표적 사례는 설치미술의 양적 증대가 새로운 형식으로 미술을 개발시킬 것이라는 기대로, 그리고 외부나 과거에 대한 끊임없는 모방과 미술사적 소급을 통해 그것들을 극복할 것이라는 기대로 요약될 수 있다.

현대 미술에 관한 국내의 이러한 이해와 그 환경에서 5년여의 수련기를 현대 미술의 첨예한 기대들이 극단적으로 갈등하고 마찰하는 뉴욕에서 마친 정동원의 새로운 회화들은 개별 미술가가 외부에 대해서 혹은, 과거에 대해서 자신의 자의식을 회화나 판화와 같은 미술의 매체에 확정짓는 실험들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구체적인 모습은 그의 회화가 갖고 있는 회색의 정서와 견고한 회화의 포맷 간의 마찰과 대립을 자신의 논리로 통합하고 종합하는 것들에서 발견된다. 회색의 화면은 한국의 1970년대 회화에서 하나의 우세한 양상이자 아방가르드로 주목된, 다소 진부한 시각적 외관이다. 정동원은 이러한 외관을 자신의 감정을 대리하는 과거로 간주하고 그 속에서 종합된 회화의 구조적 조건들을 공학적인 접근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이들 상반된 외관들의 특성을 한 화면에 종합함으로써 정동원의 최근 제작물들은 다양한 환경의 변화에 대한 개별 미술가의 수용력과 왕성한 창의력을 펼쳐 보인다. 이러한 정도원의 태도를 최근 국내에서 목격되는 두 가지 양상들에 견주어 보면 개인으로서의 미술가가 과거의 전통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미래를 매체를 통해 구상하며 그것을 극복하는 뚜렷한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정동원 제 2회 개인전
*주제 :"마름질"(Basting)

* 기간 : 1997. 11. 26.(수요일)～12. 2.(화요일)

* 장소 : 갤러리 보다, 종로구 인사동 9번지 (우)110-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