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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출판
  글쓴이   강민석
  날짜     count :   hit :

출판

 

출판이란 글자로 쓰인 도서를 창의적으로 편집하고 인쇄하거나 복사하여 여러 형태의 출판물로 제작하고 만들어진 저작물을 대중에게 배표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인쇄나 복사가 가능하기 전에는 어떻게 책을 만들었을까? 그리고 책의 재료는 무엇이었을까?

글자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하였는가는 생략하기로 하자. 아무튼 글자가 사용되면서 기록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최초에는 거북 등이나(갑골문자) 점토판(설형문자)들에 물체의 형상을 본떠 만든 상형문자를 기록하였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에도 고유의 문자 즉 가림토문자 등이 존재하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지만 아쉽게도 검증되지 않은 가능성에 불과하다.

고대이집트에서는 파피루스 줄기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종이를 사용하였다고 전해지지만 최초로 종이를 만든 사람은 중국 한나라 시대의 채윤이다. 우리나라는 곧 종이를 받아들여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우수성이 입증되고 있는 한자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종이는 당나라와의 탈라스 전투에서 승리한 이슬람 군에 포로가 된 당나라 군사에 의하여 중동으로 전해졌고 13세기경에 유럽에 알려졌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그때까지 양피지를 사용하여 기록하였다. 목판인쇄는 9세기 중국 당나라에서 시작되었다. 아마도 그 때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불교 경전을 오래 보관하기 위하여 개발하였을 것이다. 중국에 불교가 들어온 후 변방 이민족들이 중원을 두고 서로 쟁패할 무렵부터 교세가 급성장한 불교는 몇 번의 위기를 맞이하였다(31종의 법난: 북위의 태무제, 북주의 무제, 당의 무종, 및 후주의 세종). 이런 법난에서 불교경전을 보존하기 위하여 목판 인쇄술을 개발한 것은 아닐까? 이 신기술이 불교가 국교인 통일신라에 전해져 불경이 인쇄되고 고려 시대에 들어와서도 불경이 대대적으로 인쇄되었다. 특히 전 유라시아 대륙을 석권하던 몽고의 침입을 불력으로 막을 목적으로 지금 문화재로 남아 있는 팔만대장경 목판을 제작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나무는 아무리 조심스럽게 다루어도 벌레, 기생충 등에 의하여 손상하게 되므로 목판 대신에 활판을 사용하는 활판 인쇄술이 남송 시대에 개발되었고 이 신기술 역시 우리나라로 그리고 아랍 세계를 거쳐 유럽으로 전해졌다.

그렇다면 인쇄술이 등장하기 전에는 어떻게 기록하고 책을 만들어 지식을 전수하였을까? 우리나라 전통 교육 기관인 서당에서 일어난 일을 생각해보자. 훈장이 직접 필사하였거나 전해 내려온 필사본을 읽어주면 제자들이 따라 읽고 암송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원본을 보고 누군가가 다시 필사할 때 잘못 기록하는 실수가 많았을 것이다. 또한 필사자가 자기마음대로 원본의 구절을 수정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이 내용이 아무래도 사실이 아닌 듯하고 이치에 맞지 않으므로(이 원본 역시 누군가가 이미 실수하였거나 임의로 고쳤을 수도 있으니) 나도 다른 내용으로 고쳐야겠다. 이런 실수나 고의로 변경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종교 경전 등은 절대로 수정하지 못하게 금지하였고 심지어 코란은 번역조차 금지하였다. 즉 오늘날에도 코란은 아랍어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적어도 이맘(성직자)은 일상용어에 관계없이 아랍어를 읽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른 방법으로는 암기력이 뛰어난 (실제로는 시력을 강제로 잃게 하여 암기력을 극대화시킨) 맹인들에게 전 내용을 암송시켜 대대로 전해지게 하였다.

중세에 유럽에 처음으로 등장한 대학에서도 이런 필사본의 문제가 발생하였을 것이다. 필사본의 가격이 너무 비싸 도저히 구입할 수 없었던 많은 대학생들이 조합을 만들어 충실한 강의를 요구하고 이에 대항하여 교수들도 조합을 만든 것이 collegeuniversity의 어원이다.

그러므로 보다 싸게 책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따라서 1440년경에 아랍에서 전해진 활판 인쇄술로 출판하는 방법을 확립하자 성경을 위시한 귀중한 도서들의 출간 붐이 일어나고 인하여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알프스 북쪽으로 전해진 것이다.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이 성공한 이유에 인쇄술의 등장으로 새로운 사상을 빨리 값싸게 보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9.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구정관대다라니경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목판인쇄와 금속활자 인쇄를 불경의 보존 및 국가의 홍보(용비어천가 등)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전반적인 문화 발달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반면에 유럽에서는 인쇄술을 이용하여 많은 저작물이 간행되었고 이로 인하여 가장 먼저 근대화를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였던 금속활자 기술을 더 발전시키지 못하고 개항 후에 서양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인쇄술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인쇄술은 최근에 컴퓨터의 보급이 대규모로 이루어지면서 컴퓨터를 이용한 문서 작성 및 도서 제작이 가능해질 때까지는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다. 우리나라도 1090년에 컴퓨터가 대중화될 때까지는 소규모 문서 작성 및 복사는 등사기를 시용하였고 출판사와 신문사 등에는 식자공들이 필요하였다. 오늘날에는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하고 필요한 지식들은 물론 도서도 이용하지만 상당수는 인터넷을 검색하여 인용한다. 문서 작성에 필요한 편집, 그림그리기 등의 모든 작업을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시대이다. 식자공과 타자수는 사라지고 대신에 컴퓨터를 이용한 문서작성자들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그리고 복사도 컴퓨터와 연결된 프린터를 사용하여 빨리 싸게 이루어진다. 반면에 달갑지 않는 부산물 즉 저작권 침해가 새로이 나타났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인데 본인이 수고하여 만든 지적저작물을 함부로 이용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고 모든 저작물은 공유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개인 및 집단의 저작물 보호에 시한을 두면 보다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하여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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